분노가 삼키는 나를 구하는 법 – 『리어 왕』과 감정 조절의 기술

스스로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나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섰지?"라고 의심하거나, 성공한 순간에도 "곧 모두가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을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때도 "나만 이렇게 부족해"라고 느끼거나, 모든 사회 관계에서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든 순간들의 자기 불신과 혐오는 당신만의 비밀스러운 싸움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SNS에서 보이는 타인의 성공 뒤에 숨겨진 실패는 보지 못한 채, 자신만 부족하다고 여기며 내면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나도 한때 회의실에서 발언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내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지금 말했다가 모두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맸습니다. 그때 우연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만났습니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익살꾼이 되었다. 그것은 슬픔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
당신도 요조처럼 때로는 '인간 자격'을 의심하나요? 나는 그랬습니다. 사교 모임에서 웃고 있지만 내면은 "나는 여기 어울리지 않아"라는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척, 친구들 사이에서는 행복한 척, 가족에게는 괜찮은 척. 이 모든 '척'의 가면 뒤에서 진짜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소설 속 요조는 사람들 앞에서 광대 역할을 자처하며 모두를 웃게 만들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당신도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건 요조의 고백이 당신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요조의 심리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기꾼 증후군(Impostor Syndrome)'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이 증후군은 자신이 이룬 성공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지 않고, 매력, 인간관계 또는 순전히 운 덕분이라고 여기는 현상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전문직 종사자의 약 70%가 사기꾼 증후군을 경험하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조사에서는 고위 경영진의 58%가 자신의 성공이 '운'이나 '타이밍'이라고 여긴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등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벌인 속임수가 곧 들통날까 봐 두려워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감정은 더욱 강화됩니다. SNS에서 보여지는 타인의 완벽한 모습, 끊임없는 성과 압박, 그리고 '행복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페이스북 사용과 우울증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 SNS 사용시간이 많을수록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증가했습니다.
요조처럼 우리도 종종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인간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애씁니다. 직장에서는 완벽한 직원, 가정에서는 이상적인 부모나 자녀,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혐오는 깊어지고,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사기꾼 증후군의 이면에 유년 시절 겪은 부정적인 경험, 예를 들어 특정 성과를 지속적으로 얻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었던 환경이 자리한다고 말합니다.
요조의 경우, 부유하지만 정서적으로 메마른 가정환경과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의 불안정한 심리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아버지가 도쿄 출장 전 선물을 물었을 때, 요조가 자신의 바람(책) 대신 아버지가 만족할 만한 답(사자탈)을 선택하는 일화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권위자의 눈치를 살피도록 길들여졌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양육 스타일이 '조건부 긍정적 관심'으로 설명됩니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때만 가치를 인정받으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외부의 인정을 갈구하게 됩니다. 2019년 발표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부모 양육 스타일은 자녀의 성인기 우울증, 불안, 그리고 사기꾼 증후군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자기 혐오가 두 가지 법칙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첫째, '억압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약점과 불안을 인정하지 않고 억누를수록, 그것은 더 강력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요조처럼 우리도 진짜 감정을 숨기고 웃는 가면을 쓸수록 내면의 고통은 커집니다. 나 역시 직업적 불안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수록, 그 불안은 자기 혐오로 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둘째, '시기심의 법칙'입니다. SNS에서 남들의 화려한 성공담을 보며 "나만 뒤처진다"고 느끼는 순간, 시기심은 자기 혐오의 씨앗이 됩니다. 요조는 다른 이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자신은 갖지 못했다고 확신했습니다.
로버트 그린의 통찰이 흥미로운 점은, 이런 감정들이 비정상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혐오는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요조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요조는 끝내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조를 만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요조의 비극적 결말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그가 로버트 그린의 지혜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린은 『전쟁의 기술』에서 "평정심을 잃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조언이 자기 혐오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혐오의 감정이 밀려올 때, 그 감정이 곧 '나'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보세요. "나는 지금 자기 혐오를 느끼고 있다"와 "나는 혐오스러운 사람이다"는 완전히 다른 문장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을 관찰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은 우울증 재발률을 40%까지 감소시켰습니다.
인생이란 흑백이 아닌 회색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한 번의 실패로 '실패자'가 되지 않으며, 한 번의 성공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요조는 이 양가성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당신은 어떤가요?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진정한 용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더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와 높은 자존감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은 전략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내면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에게 당신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작은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느끼는 환경)이 높은 팀이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조가 평생 풀지 못한 의문이 있습니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가면 뒤에 진짜 자아가 있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모든 가면의 총합이 '나'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혐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요조는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요조는 자신의 내면을 결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시대에 자기 혐오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완벽한' 휴가 사진, 링크드인의 승진 소식, 페이스북의 행복한 가족 모임 -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하이라이트 릴을 보며 자신의 일상과 비교합니다.
2023년 메타 내부 연구(The Instagram Effect)에 따르면, 청소년의 32%가 인스타그램 사용 후 자신의 외모에 더 나쁜 감정을 느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하루 2시간 이상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성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감과 불안감이 63% 더 높았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 해외에서는 '릴 토크(Real Talk)' 해시태그와 같이 실패와 좌절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트렌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요조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을 함께 인정하고 나누는 문화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정신 건강, 사회적 소외, 인간 상태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요조의 깊은 고통과 사회의 무관심 사이의 긴장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8천만 명이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는 2000년 대비 25% 증가한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2020년 기준 약 80만 명으로, 5년 전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향상되고 있지만, 낙인과 오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간 실격"의 지속적인 관련성은 심리적 고통의 보편성과 이를 다루는 사회적 구조가 때론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상기시킵니다.
요조는 자신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라고 보았지만, 그의 깊은 고통과 소외감은 역설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인간 경험의 일부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더 큰 공감, 이해, 지원을 촉구하는 강력한 호소로 남아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정신 건강에 대한 개방적 대화가 증가하고 있지만, 다자이의 작품은 우리에게 고통받는 개인들에게 진정한 공감과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정신 건강 낙인을 줄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인간 실격"의 80년 전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당신을 향한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잠시 멈추고 "이 말이 정말 사실일까?"라고 질문해보세요. "확실한 증거가 있나, 아니면 그냥 습관적인 비난인가?" 그 질문엔 반드시 당신을 향한 부정적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그 확실한 답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칭찬할 때, 당신이 보이는 반응은 어떤가요? 혹시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 같은 말을 덧붙이시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당신을 칭찬하는 말에 바로 "아니에요" 같은 부정적인 말을 덧붙이지 않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 순간이 어색하게 느껴져도 그 어색함을 딱 5초만 견뎌보세요.
거울을 볼 때, 평소처럼 신체의 결점을 찾는 대신 10초만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물어보세요. "만약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면, 지금 이 친구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줄까?" 아마도 "너는 눈이 참 예쁜 것 같아"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점을 잊지 말기로 해요.
하루에 30분 동안 소셜 미디어 사용을 중단하고, 대신 자신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선물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명상, 산책, 좋아하는 음악 감상 등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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