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삼키는 나를 구하는 법 – 『리어 왕』과 감정 조절의 기술

"왜 어떤 날은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조차 찾기 힘들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도, 스마트폰에 쌓인 메시지도, 해야 할 일들의 목록도 당신을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대신 머릿속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잘해."
"내가 뭘 해도 소용없어."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침대에 묶어둡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혐오는 마치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완벽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혐오의 심리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150년도 더 전에 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이미 이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기혐오(Self-hatred)는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며,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는 심리입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 프로이트는 자기혐오를 어린 시절 부모의 비판이나 학대 같은 경험이 내면화되어 형성된 부정적인 자아상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인지행동학적 관점: 우리가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부정적 사고는 감정을 악화시킵니다. 예: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인본주의적 관점: 인간은 자아실현을 욕구하지만, 사회적 제약이 이를 막을 때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은 이 모든 이론을 실현한 듯한 인물입니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이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곧 40세의 익명의 화자, 관료직에서 은퇴한 후 작은 유산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아파트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마치 현대의 트롤이나 인터넷 댓글러처럼 세상에 대한 분노와 냉소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심지어 혐오감까지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소름끼치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얼굴에 “비굴한 표정 같은 것”이 있다고까지 의심합니다.
직장에 도착할 때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에서 노예와 같은 표정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애쓰며, 고상하고 지적인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얼굴이 “정말 바보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에서 그의 깊은 외모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외모에 대한 강한 열등감은 그가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모순적인 태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의 이러한 자기 인식은 동급생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욱 두드러집니다.
화자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가혹한 자기 비판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병든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매력이라곤 없는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며, 자신의 못된 성격에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진정으로 악하거나 못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의 증오심이 “단지 참새들만을 쓸데없이 놀라게 해서 스스로 위안을 받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며, 이러한 자신의 무능력함과 비열함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심술궂은 인간이 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고 탄식하며, “심술궂은 인간도, 착한 인간도, 야비한 인간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자조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찌질하고 역겨운 인간”이라고까지 평가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과거 행동과 내면의 생각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그는 학창 시절 자신을 소외시킨 친구들에게 복수하고자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복수심만 키우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한탄합니다.
또한,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고 돈을 던져주며 모욕감을 주었다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자신의 비겁한 모습에 깊은 자기혐오를 느낍니다. 그는 자신의 증오심이 자신에게만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증오를 멈추지 못하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심지어 그는 과도한 의식 자체가 병이며, 자신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라고까지 자책합니다.
화자의 자기혐오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을 경멸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자신의 특별한 부정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믿음은 동시에 그에게 깊은 수치심을 안겨줍니다. 그는 자신이 그 어디에서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평범한 “범인”이라는 생각에 갇혀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우울감에 빠집니다.
화자의 자기혐오는 그의 행동과 욕망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순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타인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인정받고 싶어 하고, 고독을 즐기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화자는 사회와 단절된 채 자신만의 ‘지하’에 틀어박혀 살아가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인정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동창생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참석하여 굴욕을 당하는 상황을 자초합니다. 이는 그가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무관심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모순된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는 상상 속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일종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인정 욕구의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회와 자신마저 경멸하는 지식인이라고 여기지만, 동시에 “나는 혼자건만 저들은 모두다”라고 생각하며 고독감을 느끼는 것에서 그의 복잡한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정상적인 인간’에게 ‘성스러운 이념’을 설파하며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을 덮어쓴 당신.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답장할 기운이 없었고, 할 일 목록은 눈앞에 있지만 시작할 동기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혹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그 원인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많은 걸 이뤘는데." "노력해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어."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 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완벽한 자신을 꿈꾸지만, 현실의 자신은 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 간극에서 느끼는 자기혐오는 현대의 유행병처럼 번져갑니다.
칼 융은 인간 내면의 부정적 감정을 '그림자'라 불렀습니다. 불안, 분노, 질투, 나약함 같은 감정들을 억압할수록 그림자는 더 강력해집니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이를 통합하지 못한 대표 사례로 리처드 닉슨을 언급합니다. 그의 억눌린 분노와 불안은 정치적 파국으로 이어졌습니다.
키신저가 "만약 누가 그를 사랑해줬더라면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됐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면 자기 파괴적인 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화자는 자신의 병리적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작품 끝에서 "어떻게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날 궁리"를 하지만, 그 여정은 미완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통합함으로써 자기혐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볼까요. 리처드 닉슨이 자신의 어두운 면을 직시했다면 어땠을까요? 도스토예프스키의 화자가 자신의 모순된 욕망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은 어쩌면 더 평온하고 진실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린의 『권력의 법칙』에서는 "자신을 재창조하라"는 법칙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사를 다시 쓰는 작업입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거울 앞에 선 오늘의 당신.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도스토예프스키의 화자처럼 지하실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은 이미 열려 있고, 그 너머엔 당신의 빛과 그림자, 그 모든 면을 받아줄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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